박진우
Park Jinwoo예술로 빚다
2021.5.20.~7.15.
한양대학교박물관에서는 2021년 기획특별전 ‘우주+人, 과학으로 풀고 예술로 빚다’ 특별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주의 기원을 찾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예술을 통하여 우주를 바라보고자 하는 한국의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우주는 인류의 시작부터 과학과 철학, 예술의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내가 속해있는 지구, 그리고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와 우주를 상상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결국 한 사람의 일생을 이루는 우주의 중심은 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예술가 중 첫 번째로 먹과 씨앗을 통하여 우주를 창조한 박진우 작가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박진우 작가는 서예를 기반으로 먹과 붓, 전통 종이를 활용하여 오랜 전통을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두와 콩, 쌀 등 생명의 기원이 되는 재료와 먹의 다양한 색감과 농도를 활용하여 어둠 속 별이 빛을 발하는 우주의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한번의 붓질로 행성의 궤적을 나타낸 작품은 마치 우주의 탄생같이 보이기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인생같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한 인간이 먹과 씨앗을 매개로 하여 예술로 빚어낸 우주를 만나보기를 기대합니다.
“전통 서예를 바탕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작품이 지닌 서사(이야기),
이 두 가지를 작품에 잘 녹여내는 데 작업 방향을 두고 있다.
모두가 낡고 진부하다고 여기는 서예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목표이다.”
玄之又玄
- 먹으로 그린 우주 -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玄之又玄
모든 오묘함의 문이다 衆妙之門
- 『도덕경(道德經)』제1장 중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소위 동아시아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전통이라 불리는 기존의 것들은 시나브로 사라져갔고, 그 자리를 서구의 문물들이 대체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글씨 쓰는 도구였던 먹(墨) 또한 사라져 가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2천 여 년 동안 글씨와 그림을 쓰고 그리는데 사용되었던 문방사우(종이, 붓, 벼루, 먹)는 지난 백여 년 간 서사도구의 급격한 변화로 더 이상 일반인들은 사용하지 않고, 몇몇의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먹색(墨色)은 잊혀져 가는 중이다.
요즘 우리가 하늘을 푸르다고 보는 것과는 달리 옛사람들은 하늘을 검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천자문의 첫 구절 ‘天地玄黃(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과 주역 곤괘(坤卦)의 ‘夫玄黃者 天地之雜也 天玄而地黃 무릇 검고 누른 것은 천지의 색이 섞인 것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그 용례와 인식을 확인 할 수 있다. 허나 그 검다는 것이 칠흑 같이 깜깜한 검은색(黑)이 아니라, 밤하늘의 깊고 오묘한 색인 ‘현(玄)의 색’으로 보았다.
그런데 옛 사람들이 먹의 색 또한 현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이 흥미롭다. 당나라 문장가인 한유(韓愈, 768-824)가 지은「모영전(毛穎傳)」에서 먹을 진현(陳玄)이라고 언급한 이래로, 먹의 별칭은 진현으로 많이 불리었다. 먹을 쓴다는 것이 현을 늘어놓는 것, 현을 펼친다는 의미이다. 하늘의 색을 단순히 검은색으로 보지 않은 것처럼, 먹색이 가진 아득하고 깊은 색을 주목한 것이다. 진현(眞玄), 현림(玄林), 현향(玄香)처럼 먹의 이름에 현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하늘과 먹은 공통적으로 현의 색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동질성에 착안하여 먹색으로 하늘, 우주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현지우현(玄之又玄)’은 노자의『도덕경(道德經)』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만물의 근원인 도(道)의 오묘한 신비를 표현한 말인데, 먹이 가진 심오(深奧)한 색을 표현하는 데도 적절해 보인다.
잊혀져 가는 것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전통을 새로운 맥락으로 볼 때, 비로소 전통은 다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잊혀져 가는 먹색이 우주로 변화했다. 먹색이 주는 깊고 현묘한 느낌을 현대인들이 새롭게 마주하고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한다.
Universe of seeds
- 씨앗 우주 -
시작은 <물바람>(「태풍고백」, 국립제주박물관, 2020)이었다. 태풍을 주제로 한 <물바람>은 먹물을 찍은 붓을 공중에서 뿌리는 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다. 태풍의 특징인 물과 바람을 한 화면에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이 뿌리기 작업으로 우주를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된 것이 먹으로 그린 ‘우주시리즈’이다.
그때 마침 식탁에 지인이 두고 간 알호두가 있었다. 문득 호두가 하나의 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호두를 비롯한 작은 씨앗들을 작품의 재료로 썼다. 씨앗은 그 안에 핵(核)이 있고, 생(生)과 멸(滅)이 있으며, 지금은 비록 작은 존재들이지만 수 천, 수 만 배로 커질 수 있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얼핏 보기에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색을 지닌 독립된 존재이다. 즉 씨앗 하나하나가 소우주인 것이다. 이런 모습이 크던 작던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는 우주의 별들과 오버랩되었다. 또한 유연먹(油煙墨)은 씨앗을 압착하여 만든 식물성 기름을 태워 생긴 그을음을 주성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씨앗들의 집합체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실제 씨앗과 씨앗으로 만든 먹이 ‘씨앗 우주’의 재료가 되었다.
먼저 작품의 형태를 구상하고 그 도안에 따라 종이 위에 호두와 콩, 쌀, 좁쌀 등의 씨앗들을 배열했다. 씨앗들을 섬세하게, 고르게, 적절하게 배열하는데 꽤 많은 공이 들어간다. 그리고 청먹(靑墨)으로 불리는 송연먹(松煙墨)부터 담묵(淡墨)으로 뿌리기를 시작한다. 이후 유연먹(油煙墨)의 농묵(濃墨)으로 점차 색을 진하게 올린다. 수십 종의 먹을 갈고, 먹의 농담을 조절하며 수 천, 수 만 번의 먹을 뿌린다. 붓을 직선으로 내려쳐서 먹물을 뿌리게 되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늘 신중해야 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잡생각 없이 오롯이 먹색에 집중하며 뿌리기 작업을 반복한다. 뿌리기에만 최소 며칠에서 십일 이상이 소요된다.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몸을 쓰는 노동, 수행에 가깝다. 언제 작품을 끝내야 하는지도 관건이다. 먹물 뿌리기가 끝이 나면, 마지막으로 종이 위에 올려둔 씨앗들을 걷어낸다. 건조했던 씨앗에 먹물이 닿아 종이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다. 씨앗이 있던 자리는 먹물이 닿지 않아 종이 본연의 색이 그대로 남게 된다.
그렇게 씨앗은 밝게 빛나는 수많은 별로 다시 태어난다.
nameless star
- 이름 없는 별 -
무한한 우주 속 수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그중 소수의 별들만 이름을 갖고,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받는다. 대부분의 별들은 그렇지 못한 채,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부과된 생(生)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 별들이 이름만 없을 뿐, 이름 있는 다른 별처럼 밝게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느 별처럼 밝게 빛나는 존재들이다. 이런 이름 없는 별들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을 본다.
즐겨 쓰는 재료 중에 먹이 이런 이름 없는 별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먹은 영화나 연극에서 배경 세트나 이름 없는 엑스트라처럼 늘 작품 뒤에 숨어서 자신의 역할을 한다. 불멸(不滅)의 작품을 위해서 자신은 멸(滅)할 수밖에 없는 타고난 운명이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먹은 온전한 모양이 없고, 몸의 일부가 닳아있다. 오랜 시간과 사용자의 흔적이 고스란히 몸에 배이게 된 것이다.
먹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먹들을 구매한다. 그 중에는 새것이 아닌 중고품도 많다. 한 때는 서예가의 손때 묻은 애장품이었던 먹은 먹물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채로, 깨지고 금이 난 상태로 내 손에 들어온다. 경매에서 이러한 먹들은 인기가 없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의 먹들도 다시 만져주고, 깨끗하게 손질해주면 금세 생기를 갖는다.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뭔가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름 없는 것들이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되어본다. 이름 없는 별들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닳고 부딪치며 살아온 이름 없는 먹들이 모여 작품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The road - orbit
작업하는 작품 중에 먹선(墨線)으로 조형을 만드는
개별 작품마다 종이와 먹을 다르게 사용하여, 바탕과 먹색의 변화를 꾀하였다. 종이는 죽지(竹紙), 염색 죽지, 닥지(楮紙), 염색 닥지, 선지(宣紙), 옥판선지(玉板宣紙) 등을 먹은 송연먹과 유연먹 등 전통먹을 사용했다. 모든 작품은 한 번 먹물을 적신 붓으로 일필(一筆), 즉 단 한 번에 그은 것이다.
먹물을 듬뿍 머금은 선의 처음 부분은 에너지가 충만하다. 낙차가 큰 폭포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붓에 있던 먹물이 아래의 종이로 쏟아진다. 마치 에너지를 응축하여 탄생한 별처럼, 굵고 진한 먹색이 주는 기운이 강하다. 먹선이 후반부로 갈수록 종이에 전달되는 먹은 옅어지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소수의 붓털에 묻은 먹으로 선이 그어진다. 종국(終局)에 가서는 붓이 머금은 모든 먹이 없어지면서 더 이상 운필을 할 수 없게 된다. 일필로 선을 긋는 것으로 별의 탄생과 소멸, 한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동물의 털로 만든 모필(毛筆)로 동그라미를 긋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시∼6시 방향의 선과 달리 6시∼12시 방향의 선은 글자에서는 쓰지 않는, 실재하지 않는 선이기 때문에 이 구간에서 붓을 장악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빗자루 쓸 듯이 붓을 눕혀 ‘휙’ 이 구간을 통과할 수도 있지만, 획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붓을 세워서 운필해야한다. 서예에서 말하는 중봉(中鋒)이다. 그래야만 획이 단단하고 힘이 있어, 기운생동(氣韻生動)이 느껴진다. 어렵다고 그 길을 피해서는 안 된다. 붓이 꼬이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 때 그 자리에서 붓을 종이에서 떼고 획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붓을 조금씩 다시 세우고 원래 상태로 복원시키고, 다시 탄력을 주면서 그 구간을 통과한다. 그렇게 반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비교적 쉬운 구간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마치 인생에서 평안과 시련이 계속해서 부침(浮沈)되는 것 같은 형상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하게 궤도를 도는 행성들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다.